글제목 정전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9-01-17 15:2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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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정전입니다.

한국에선 최근엔 좀처럼 없는 일이지만 멍하이에선 종종 있는 일입니다. 놀라서 밖으로 나가보면 저 혼자뿐입니다. 처음엔 저희 가게만 그런가 해서 다른 가게로 들어가 보면 마찬가지로 정전입니다. 깜깜한 데서 눈만 말똥말똥 뜨고 무슨 일이냐며 오히려 저한테 물어봅니다.

역시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입니다. 저도 이젠 정전이 되어도 그러려니 합니다. 낮에는 태양이 있으니 정전이 되어도 별 차이 없이 하던 일 그대로 합니다. 손님이 있으면 다소 번거롭지만 찻물은 가스레인지에 주전자를 올려서 끓이고 차를 우리면 됩니다. 아니면 자전거를 타고 차 시장을 돌아봐도 됩니다.

전기공사를 라인 별로 나누어서 하기 때문에 멍하이 시내 전체가 정전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최근에 생긴 꽌청(冠城) 시장부터 지아밍(佳茗) 시장 등을 유람하듯 천천히 둘러봅니다. 자주 다니다 보니 아는 가게들도 하나 둘 늘어나고 차 한잔하고 가라며 붙잡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집 저집 다 보자면 한달을 다녀도 다 보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최근에 멍하이는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가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고 있는 차 시장을 보면 과연 저렇게 많이 생긴 가게에서 생계라도 유지하려면 얼마나 많은 손님들이 멍하이로 와야 될까라는 걱정도 듭니다.

전기공사는 주로 낮에 하지만 밤에도 가끔 정전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게엔 항상 초를 구비해둡니다. 보통은 예고도 없이 느닷없이 정전이 되기 때문에 이젠 그러려니 하지만 그래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제법 규모가 있는 식당들은 따로 조그만 발전기를 준비해두고 상황에 따라 가동하곤 합니다.

한번은 손님들이랑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중에 정전이 되어서 때 아닌 촛불잔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 말로 깜짝 쇼도 아니고 서먹한 사람들이랑 흐르는 촛농을 바라보며 먹는 밥은 그다지 운치 있지 않습니다.

이곳 대부분의 사람들은 밤에 정전이 되면 촛불을 밝히거나 그냥 일찍 문 닫고 퇴근합니다. 이런 걸 보면 이곳은 중국이고 시내 중심엔 고층건물들이 있지만 아직도 시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살고 있는 마을에도 종종 정전이 됩니다. 어떨 땐 이삼일씩 정전 상태가 이어집니다. 정전 정전하다 보니 자꾸만 전쟁을 중지한 상태인 정전(停戰)이 떠오릅니다. 정전이란 끝난 건 아니고 멈춘 상태라는 뜻이지요. 조만간 전기가 들어오듯이 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한반도는 아직 정전 상태입니다. 정치적인 이야기는 관심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지만 아무튼 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일 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할 것입니다.

가게에서 십분 거리에 있는 저의 오두막으로 퇴근하여 정전된 밤을 보냅니다. 마을에서 꿀을 채취하고 남은 밀랍으로 만들어서 향기로운 촛불 한자루 밝혀놓고 잠시 명상에 젖어 봅니다. 칠흑 같은 하늘에 주먹만 한 별들이 촘촘히 박혀있습니다. 어두울수록 별빛은 더욱 찬란히 빛납니다.

애초부터 TV를 들이지 않았기에 퇴근 후엔 전기가 있으나 없으나 비슷한 생활입니다. 노트북으로 글을 쓰거나 매일 잠들기 전 한시간, 일어나서 한 시간 정도 명상을 하는 게 전부입니다.

마눌님이나 딸내미는 한국에서 집에 있을 땐 늘 TV만 보면서 뭔 명상 같은 소리 하고 있냐고 하지만 명상이 뭐 별건가요! 저는 마눌님이 믿거나 말거나 TV 보면서도 때론 명상을 합니다. 그저 생각을 비우고 비운다는 생각마저 비우면 그대로 명상입니다. 그러다 잠이 오면 잡니다. 정전(停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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