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석곡을 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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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등록일 2019-01-17 15: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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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이 가게 앞 화단에 석곡(石斛)을 심었습니다.

얼마 전 거랑허 수후 차농이 자기네 차밭에 버려져 있는 고사목을 선물이라며 가져다주었습니다. 전에 차밭에 갔을 때 원시림 속 수백년 묵은 나무가 천수를 다하고 고사하여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귀한 것이라고 했더니 잊지 않고 있다가 내려오는 길에 실어 온 것입니다.

한국에도 지리산 덕유산 등지에 자생하고 있는 구상나무를 흔히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고 합니다. 비바람에 풍화되어 부질없는 껍데기 살점일랑 모두 세월에 내어주고 올곧은 뼈대만 남은 나무를 봅니다. 흡사 보리수 아래에서 고행을 하던 싯다르타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싯다르타도 결국은 수자타가 올린 죽을 먹으며 고생을 풀었지요. 깨달음이 고행으로만 완성되지 않음을 몸소 보여주시고 녹야원에서 그리고 수많은 곳을 옮겨 다니며 수 없는 비유로 천고에 다시없을 진리의 말씀을 전해주시고 인간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야말로 돌아가신 것이지요.

우리는 흔히 죽음을 돌아갔다는 표현을 쓰는데 어디로 돌아가는지 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각자 자신의 신앙관에 따라 천국으로 천당으로 혹은 지옥으로 갈 수도 있겠지요. 저는 어릴 때부터 늘 이런 고민을 해 왔습니다만 어느 순간부터 그냥 그냥 살아가고 있습니다. 찰나의 어느 순간에 벼락같은 깨달음이 온몸을 꿰뚫고 다가와 이것이 정답이니라 하고 깨달은 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만나는 사람들이 저보고 자꾸 도사 같다고 합니다. 심지어 고향 친구 중에는 제가 공중부양을 하는 걸 봤다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ㅎ

 

 

제가 마른 편이긴 하지만 새털처럼 가벼워서 바람에 날리어 뜨 오를 리는 만무합니다. 다만 게을러서 아직도 수염은 이 주일에 한번 머리는 두세달에 한번씩 깎으니까 흡사 산에 사는 사람 같아서 돌도사 소리를 듣는 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철부지 적엔 일년에 한번만 머리를 깎기도 했습니다. 4월 4일에 죽을 사 자가 겹쳐서 경사스럽다며 삼대 같은 머리카락을 식칼로 밀고 생 대가리를 만들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2001년 지금의 석가명차 자리에 찻집을 차리고 처음에 장사도 안되고 무료해서 잠시 주역이랑 명리학 공부도 했습니다. 데이터가 맞는지 확인해야 해서 주로 아는 사람 위주로 실험 삼아 주변 사람을 대입해 보았습니다. 근데, 어라! 뭔가 맞아떨어지는 것이 신기해서 세상에 이런 학문이 다 있네 하며 밤새워 골몰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엔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도 확인차 몇몇 사람을 대입해보곤 했는데, 어느새 소문이 나서 가게 앞에 사주 좀 봐 달라고 아줌마들이 줄을 서네요…ㅎ

 

 

아차! 큰일 낫다 싶어서 바로 그만두었습니다만 생각해보면 모두 다 부끄러운 기억들입니다. 자신의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이 어찌 다른 사람의 운명을 논하겠습니까! 어쩌면 세상의 모든 기록들이 다 마찬가지 일 수 있지만 특히 이러한 책들은 어려운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인생은 대부분 통계 속에 있으니, 겨울이 왔으면 봄은 반드시 온다는 이치를 설명해주는 역할밖에 할 수 없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고사목의 앙상한 뼈대에 석곡을 붙입니다. 움푹 파인 흔적마다 녹색 생명이 새롭게 일렁거립니다.

석곡을 이곳에선 ‘스후’ 라고 부르는데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서 꽃은 보통 흰색이나 분홍색이 많지만 자색으로 피는 것은 더욱 귀하게 여깁니다. 해열 진통에 좋다고 하여 최근엔 약재로도 개발되어 대량으로 양묘하고 있습니다. 차산을 다니다 보면 야생에서 자란 석곡도 종종 봅니다. 마침 차농이 준비해준 야생 석곡과 이웃에게서 선물로 받은 것들을 모두 고사목에 올려 봅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옆 화단이라 누군가 가지고 갈 수도 있다고 하지만 인연 따라가겠지요. 저희만 볼 수 있는 가게 안의 답답한 공간보다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보면 더욱 좋습니다.

언젠가 꽃 피는 걸 볼 수 있을까요? 심는 마음 한자락에 이미 꽃은 활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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