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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9-03-16 19: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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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머리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입이 기억합니다.

무슨 맛 무슨 맛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결국 맛의 정확한 표현은 해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입은 한번 맛보면 그냥 알아버립니다. 표현할 수는 없어도 훗날 다시 그 맛을 보면 예전의 그 맛이라는 걸 금방 알아차려버립니다. 물론 입이 기억하는 맛도 결국 뇌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직감적으로 다가오는 맛의 실체를 논리로 풀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차는 이런 맛! 저 차는 저런 맛! 차에 있어서 맛이란 무엇일까?

차업을 하면서 끊임없이 부닥치는 문제이지만 저는 아직도 명확하게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차업을 시작한 지 이십여 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차를 소개하고 맛에 대해 이야기해 왔지만 돌아서면 왠지 모르게 공허한 날들이 있습니다.

맛은 기본적으로 매운맛, 짠맛, 단맛, 쓴맛, 떫은맛 다섯 가지로 분류합니다. 약한 그리고 강함이라는 보조 의미를 넣으면 열다섯 가지 정도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과연 차가 가진 오묘한 맛을 다 표현해낼 수 있을까요? 더구나 차에 있어서는 매운맛과 짠맛은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특수한 경우 그리고 가공이 잘못되었거나 보관상의 문제로 간혹 돌출하기도 합니다.)

결국 쓴맛, 단맛, 떫은맛 세 가지가 차맛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조건입니다. 꿀, 과일, 꽃 등의 각종 향기 성분에 비유하여 맛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차에 있어서 향기는 맛을 한층 상승시키는 보조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향기 또한 맛의 좋고 나쁨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지만 차를 향기로 마시진 않습니다. 차에 있어선 어디까지나 맛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맛을 표현 함으로서 오히려 그 차가 가진 오묘한 느낌을 한정 짓고 때론 표현 자체가 지나친 수사의 현학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차라리 맛있다. 맛없다. 두 가지로만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맛에 대한 진솔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같은 차라도 시간과 장소, 사용하는 다기와 물, 개개인의 성향, 당일의 날씨와 기분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리 느껴질 수 있고 좋고 나쁨의 판단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차인 이라면 일상에서 늘 마시는 차이지만 그때그때마다 변화하는 차의 오묘한 느낌을 말로 글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것이 좋은 차이고 좋은 맛일까요?

차의 출발은 선사시대의 신농씨로부터 라고 합니다. 약초를 시음하다가생긴 독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 또 다른 약이 차의 시원입니다. 애초에 약으로부터 출발한 차가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분화되었고, 약으로는 인체의 각 부분을 다스리는 쪽으로 발달하여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되었습니다. 반면 차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늘 가까이하면서도 명확한 규정 없이 그저 교양 있게? 마시는 음료로만 여겨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일부 지역에서는 차를 간식처럼 때론 약처럼 음용하고 있고 그 효능 또한 입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차는 여전히 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 어디에서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차는 수행이라느니! 정신을 다스린다느니! 기운이 어떠니! 등등 개인의 주관에 기인한 잡히지 않는 공허한 논리를 펼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차를 마시면 우선 몸이 반응하고 더불어 일어나는 정신적인 작용에 대하여 나는 굳이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마시면 몸을 따뜻하게 하고 입안을 맑게 해주는 차를 단순한 음료라고만 생각하기도 그렇지만 지나치게 신비화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차란 과연 무엇일까요?

중국에서 비롯하여 한국 일본으로 전 세계로 확산된 차의 핵심을 간단히 정의하라고 하면 저는 그냥 문화라고 하겠습니다. 흔히 문화는 배부른 다음의 여기로 여겨지곤 합니다. 다소 어휘의 사용감이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엄연한 현실임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당장 굶어 죽을 상황이면 무슨 문학이 있고 음악 미술이 있으며 차를 마시겠습니까!

특히 맛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배고프면 쓴맛 단맛 가리지 않는 것이 당연지사지요. 일단 이렇게 인정하고 차를 정의하자면 차는 배부른 다음에 쓴맛, 단맛 가리면서 마시는 음료가 됩니다. 그 속에서 개개인의 기호가 생겨나고 대중의 기호를 잘 맞춘 차가 인기 있는 차가 되어 그 차의 문화와 함께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렇다면 대중의 기호는 어떻게 수렴될 수 있을까요?

어떤 한 사람이 차를 마시고 맛있다고 하게 되면 맛있게 전파되고! 맛없다고 하게 되면 맛없게 전파된다. 두 사람이 마시고 한사람은 맛있다고 하고 한사람은 맛없다고 하면 영향력이 큰 사람의 뜻대로 맛은 전파된다. 세 사람 이상이 마시게 되면 더 많은 사람이 선택한 맛이 전파된다. 그렇게 전파된 맛이 하나의 영향력 있는 문화가 되고 이러한 문화를 견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경주되어 오늘날의 차 문화가 형성된 것입니다. 정답은 애초부터 없습니다. 그저 그렇게 형성되었고 우리는 그 문화를 좇아가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것이 문화의 속성입니다.

여기서 잠깐, 누구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문화를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요?

물론 가능합니다. 다만 그 영향력을 얼마나 확대하고 재생산해낼 수 있느냐가 문화로서의 가치와 지속성을 결정짓는 요건이 될 것입니다.

오운산의 시작은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기회가 주어졌기에 저희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오운산의 문화를 형성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이십여년 차업에 몸담은 제 인생의 마지막 꿈입니다.

그렇다면 오운산이 만들고자 하는 문화는 무엇이고 어떤 차맛으로 대중에게 접근할 것인가?

석가명차-오운산이 2015년 본격적으로 보이차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오운산 앞으로 만들고 싶은 보이차의 특징을 여덟 자로 정리한 글귀가 당년호차(當年好茶) 경년신차(經年新茶)입니다.

- 그해에 만들어 그해에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차, 세월이 흐르면 새로운 맛으로 다시 태어나는 차 -

현재 보이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가치 개념은 보이차는 햇차보다는 묵혀야만 좋은 맛이 된다는 인식입니다. 즉 그해에 만든 차는 맛있게 마실 수 없기에 묵혀 두었다가 먹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 논리지만 오운산은 당년호차(當年好茶) 즉 보이차는 원래 그 해에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차라는 이념으로 시장의 견고한 논리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수수천년 동안 보이차는 원래 그해에 만들어서 그해에 먹었던 차였음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몇 년이 지나면 버리는 차였습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산업이 발달하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대량 생산 체제가 도입되었습니다. 더불어 중국에서는 문화혁명이 발발하고 가진 자들의 고상한 취미쯤으로만 여겨졌던 차 문화는 지하로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오히려 노차의 가치를 발견하고 보이차를 마시는 인구를 증가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보이차 산업은 다른 모든 산업과 더불어 대중화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산길을 따라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고수 차밭은 생산성을 이유로 파괴되고 경제 작물로 전환되었습니다. 80년대로 들어서면서 차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면서부터는 찻잎의 발아 개체 수가 높은 품종이 개발되고, 공산당 주도로 생산성이 높은 소수차 위주의 차밭이 조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산된 생차들은 차성이 강하여 그해에 맛있게 먹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보이숙차가 개발되었고 소비자의 기호와 눈높이에 맞춘 차들이 대량으로 개발되고 출시되어 시장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보이차들은 원료가 가진 질적인 한계와 쾌속 발효차의 숙미 때문에 오래 두어야만 비로소 좋은 차가 된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입니다.

모든 차는 출시될 때의 맛이 기준이 됩니다. 홍차는 홍차 맛이 있고, 녹차는 녹차의 원래 맛이 있습니다.

그 맛이 변하면 변질된 것으로 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이 차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시될 때의 맛이 전부가 아니라 계속해서 변해 가는 맛을 오히려 더욱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년호차(當年好茶)와 더불어 오운산 차의 핵심 이념인 경년신차(經年新茶) 즉 세월이 흐르면서 매년 새로운 맛으로 다시 태어나는 차라는 뜻은 보이차와 다른 차들을 구분하는 또 다른 특징을 말한 것입니다.

진정한 고수 순료를 사용하여 원래부터 보이차가 가진 참 가치를 살린 당년호차(當年好茶) 즉 그 해에 당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차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그렇게 만든 차라야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점 새로운 맛으로 변화하여 결국 역사를 증명할 수 있는 진정한 명차 즉 경년신차 (經年新茶)가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의 시장은 어쩌면 변해가는 맛에 종속되어 원래 보이차가 가진 가치에 조금은 충실하지 못하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문화의 옳고 그름은 없지만 뿌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운산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소중한 자원인 고수 차밭을 무작정 개발만 할 것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고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인류의 소중한 자산인 고수차를 보호하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길을 찾고자 합니다. 매년 일정한 계획을 수립하고 적절한 시기에 한잎한잎 진정한 고수 원료를 수확하겠습니다. 느린 가공법으로 전통적 방식에 최대한 가까운 기법으로 생산하여 보이차 원래의 개념인 그해에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차를 만들겠습니다.

오운산은 경영이념은 ‘仁做仁茶 사람이 만든 차 사람이 마십니다.'

오운산 차의 이념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불경에 나와있는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문장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매사 기본에 충실하고 바른길로 가겠다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사업의 성공 여부도 중요하지만 먼저 사람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유사 이래 모든 문화는 사람에 의해 창조 된 것입니다. 석가명차-오운산의 대리상 계약 조건 첫번째로 명기한 것은 인품입니다. 기타 조건이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사람이 진실하다면 무엇이던 함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소중한 자산인 고수차를 정성으로 만들고 전 세계의 진실한 다우들과 나누며 다 함께 석가명차-오운산의 문화를 열어가고 싶습니다.

 

 

 

*1월 23일 귀국합니다. 설을 쇠고 2월 말쯤 출국하여 봄차가 끝날 때까지는 계속 멍하이에 머물 것 같습니다. 고국에 있는 동안 올해 생산할 오운산 제품들에 대한 선주문을 받겠습니다. 선주문 방식은 고객님들 입장에선 오운산 제품을 가장 좋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기회이며 저희도 일정 부분의 자금 압박을 해소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삼월 말로 예정되어 있는 '세계차인축제' 참가와 차산 기행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일정을 확정할 계획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국 본사로 방문하시거나 전화를 주셔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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