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모차 시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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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등록일 2020-01-09 13: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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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그해에 들어온 모차들을 전부 모아서 당해 연도 기념병을 만들고 있습니다. 올해도 기념병에 들어갈 원료들을 모으면서 전부 병배하기 전에 다시한번 여러 지역에서 들어온 원료들을 비교 시음해보고 있습니다. 보이차는 쇄청을 마치고 바로 마실 때와 일주일 후 그리고 몇달 혹은 몇년 후의 맛은 많이 다릅니다. 막 쇄청을 마친 차를 마시면 쇠비린내 혹은 화근내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곳 차농들은 흔히 태양미 라고 부릅니다. 처음엔 태양을 맛으로 표현하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햇볕을 먹어 본 사람도 없을 텐데 태양 맛이라니 이 무슨 황당한 단어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보이차는 다른 차와 달리 가공의 마지막 과정을 강한 햇볕에 노출시켜 건조되기 때문에 그 맛이 남아 있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 글 '보이차의 불편한 진실 3'에서 잠시 말씀드렸지만 이 쇄청 과정을 보이차와 다른 모든 차를 구분하는 아주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월진월향(越陳越香)'의 비밀이 이 속에 숨어있지 않을까 합니다만 아직 과학적 원리로 증명할 순 없으므로 단정 짓지는 않겠습니다.

 

 

만든 지 일주일정도 지나면 태양미는 많이 줄어들고 원래 이 원료가 가진 제맛을 서서히 드러내줍니다. 그리고 몇달이 지나서 마시면 비교적 정확히 이 원료가 가진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서 마시면 또다시 새로운 맛으로 느껴집니다. 수십년이 지나서 마시면 그땐 햇차와는 완전히 다른 차가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운산의 생산이념으로 당년호차(當年好茶)와 더불어 경년신차(經年新茶) 즉 보이차는 세월이 흐르면서 매년 새로운 맛으로 다시 태어나는 차라고 정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매년 봄마다 바로바로 원료를 선택해서 차를 생산해야 되는 입장에서 이렇게 무작정 세월을 두고 시음만 할 수는 없습니다. 막 건조가 끝난 태양미 풀풀 나는 모차라도 몇달 혹은 몇년 뒤의 맛까지 추정할 수 있어야 내가 원하는 원료를 구할 수 있습니다. 타이밍을 놓치면 좋은 원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시음은 결코 단순한 작업이 아닙니다. 가게의 상수도에 정수기를 설치하고, 수분측정기도 가동해보고, TDS 기구도 사용해봅니다. 그러나 모든 건 그저 참고용일뿐입니다. 최종적으로 입맛과 몸의 반응으로 구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배운 지식을 총동원하고 때론 잠시 앉아서 머리 비우기를 시도하고 차를 마십니다. 그러나 향을 구분하고 맛을 가려서 좋은 차를 선택하기란 늘 느끼는 것이지만 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합니다. 나아가 저는 일반 마니아가 아니라 차를 생산해서 대중에게 소개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기에 내가 좋아하는 맛보다도 일반 차인들이 좋아하는 맛을 고려해야 됩니다. 물론 좋은 차들은 공통된 특징들이 있습니다만 내가 좋아하는 맛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라는 것도 유념해야 됩니다. 품평배에 일분! 우선은 원료가 지닌 생태적 특성을 보고 향기와 맛을 살핍니다. 다시 삼분! 밀도와 내포성을 보고 엽저를 살펴 가공의 적합성을 봅니다. 그리고 회감(回甘)과 회운(回韵)을 느껴봅니다. 마지막으로 가격대비 품질을 견주어 봅니다. 정답이 있는데도 없을 수 있고, 없는 정답 속에서도 정답을 찾는 것이 차 만드는 사람의 소명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선택된 원료는 그 회사의 상품이 되고 만든 사람의 정신이 상품과 함께 포장되어 세상 사람들의 선택을 기다리게 됩니다.

 

 

오늘은 다소 건조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사실 침대만 과학이 아니라 차도 과학입니다. 아직도 맛에 대하여 무작정 뜬구름 잡는 소리로 이러쿵저러쿵 도사 흉내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찻물 떨어지는 소리만 들어도 안다는 분, 찻잎 혹은 엽저를 보면 안다는 분, 입만 대면 어느 지역의 소수차인지 고수차인지 단박에 안다는 분, 황홀한 언어로 있지도 않는 환상을 그려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찬란한 비유를 통해 차맛의 다양성과 내면적 가치를 드러내어 차의 세계를 넓혀 나가는 것은 좋은 일이나 자칫 음풍농월로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차는 농부가 손아귀에 움켜쥔 향기 나는 이파리며! 맹물에 일렁이는 파도요 거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 듯이 차는 차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래도 차라서 저는 차를 만들고 있습니다만 지나친 환상은 차를 만드는 이나 마시는 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봄에 생산해서 육개월이 지난 차들을 다시금 시음해보니 처음의 선택이 대부분 옳다는 느낌이지만 솔직히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 드는 차들도 있습니다. 5년여 동안 이백여 곳의 고수차 산지를 둘러보고 수천수만회의 시음을 거듭했지만 아직도 시음이란 매번 어렵고도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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